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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 ‘왓-야이-차이-몽콘’ 사원: 승전과 패망의 아픔이 공존하는 역사적인 공간


 

•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아유타야 역사 공원(Ayutthaya Historical Park)의 핵심 유적지 중 하나. 아유타야 역사 공원은 아유타야 왕국의 옛 도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사원과 유적지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말.

• 1357년, 아유타야 왕조의 초대 군주, 라마티보디 1세(우텅王)에 의해 건립.

•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 1592년, 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레쑤언 대왕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움.

• 1767년, 버마에 의해 아유타야는 멸망하고 사원은 폐허가 됨. 승전의 찬란함과 패망의 비극이 공존하는 아유타야 왕국의 상징 

• 나레쑤언 대왕: 재위 기간(1590-1605) 동안 버마(미얀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아유타야 왕국의 독립을 확고히 유지하고 아유타야가 동남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음.


▶ 사원 건립

        '왓-야이-차이-몽콘’(วัดใหญ่ชัยมงคล) 사원은 아유타야 왕조(1350~1767, 417년간 존속)를 창건한 라마티버디 1세(สมเด็จพระรามาธิบดี ที่ 1, 재위: 1350-1369)가 1357년에 세운 아주 유서 깊은 사원이다. 라마티버디 1세에게는 콜레라로 죽은 왕자가 있었다. 왕은 왕자의 시신을 화장한 화장터에 왓-빠-깨우(วัดป่าแก้ว)라는 이름의 사원을 짓고, 왕자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이 사원이 바로 ‘왓-야이-차이-몽콘’ 사원의 전신이 되었다.

        라마티버디 1세는 왓-빠-깨우 사원을 당시 실론(스리랑카)에서 수도하고 돌아온 승려들에게 수행처로 내 주었다. 실론에서 돌아온 승려들은 카나-빠-깨우(คณะป่าแก้ว)라는 이름의 종단을 이루어 활동했다. 명상 수행을 중시한 이 종단은 실론 승단과의 연계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고, 왕실의 후원 아래 그 위상과 명성이 날로 높아져만 갔다. 아유타야의 백성들에게 매우 높은 신망을 얻은 결과, 라마티버디 1세는 이 종단의 최고 지도자에게 승왕에 버금가는 직책을 부여했고, 왓-빠-깨우 사원은 명상 수행에 전념하는 승려들의 구심체로 발전했다.


▶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

        ‘왓-야이-차이-몽콘’ 사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높이가 약 62m에 달하는 ‘프라-쩨디-차이-몽콘’(พระเจดีย์ชัยมงคล) 불탑이다. 프라는 왕실이나 불교 관련 용어에 붙는 존칭으로 신성함을 나타내고, 쩨디는 탑, 차이는 승리, 몽콘은 상서로움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상서로운 승리를 기념하는 불탑 정도로 풀이가 되겠다.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의 모습
사진 출처: https://www.thairath.co.th/scoop/1979624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은 1592년, 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레쑤언 대왕(สมเด็จพระนเรศวรมหาราช, 재위: 1590-1605)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 아유타야는 건국 이후 버마와 줄곧 전쟁을 치렀는데, 1569년, 버마의 따웅우(Toungoo) 왕조에 의해 도성이 함락되고, 결국 버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어린 시절의 나레쑤언도 당시 따웅우 왕조의 수도 바고(Bago)에 7년 동안이나 인질로 잡혀 있어야 했다.

        아유타야의 독립은 마침내 나레쑤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나레쑤언은 1584년, 버마에 대한 종속을 거부하고 독립을 선포했다. 당시 나레쑤언은 왕세자의 신분으로 핏싸누록(아유타야의 북부 거점 도시)을 다스리는 영주였다. 이후 버마는 나레쑤언의 독립 선언을 무력화하기 위해 아유타야를 수차례 침공했으나, 나레쑤언의 지휘 아래 모두 격퇴되었다. 1590년, 아유타야의 18대 왕으로 등극한 나레쑤언은 1592년, 버마와의 코끼리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아유타야의 독립을 더욱 공공히 했다. 나레쑤언은 이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 사원의 탑을 대폭 증축하여 거대한 불탑을 세우고, ‘프라-쩨디-차이-몽콘’(상서로운 승리를 기념하는 불탑)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사원의 이름도 불탑의 이름을 따서 ‘왓-야이-차이-몽콘’(상서로운 승리를 기념하는 사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버마와의 코끼리 전투를 묘사한 벽화
1592년에 벌어진 버마와의 전쟁에서 
아유타야군의 수장인 나레쑤언과 
버마군의 수장인 왕세자가 
코끼리를 타고 일대일 전투를 벌인 장면을 묘사한 벽화.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아유타야에 대한 버마의 위협이 오랫동안 사라지게 되었다. 
(태국 국립 기념관 소장)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 앞에서 찍은 사진
1592년, 아유타야가 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지었으나 
1767년, 아유타야는 버마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으니, 
승전의 기쁨과 패망의 아픔을 함께 간직한 역사적인 불탑이라 할 수 있다. 
계단을 통해 불탑의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 볼 수가 있다. (촬영: 2025년 10월)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의 전면, 좌우 양쪽에 있는 불상의 모습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의 전면, 좌우 양쪽에 있는 불상의 모습
불탑의 전면, 좌우 양쪽에는 
불상을 모신 두 개의 작은 전각이 있었는데, 
지붕과 벽면이 파손돼
불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촬영: 2025년 10월)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의 내부 공간에 안치된 불상의 모습
불탑의 내부 공간에 안치된 불상의 모습 (촬영: 2025년 10월)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 주변으로 항마촉지인 불상들이 열을 지어 안치되어 있는 모습
불탑 주변으로는 항마촉지인 자세의 불상들이 
열을 지어 안치되어 있다. (촬영: 2025년 10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불교에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표현한 불상의 자세로, 결가부좌한 채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은 가볍게 땅을 향하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 배꼽 앞에 놓은 자세를 말한다.

항마촉지인 불상의 손 모양을 표현한 그림

나레쑤언 대왕의 동상
나레쑤언 대왕의 동상
사원 뒤편에는 나레쑤언 대왕을 기리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나레쑤언 대왕은 1605년, 원정길에서 병(천연두로 추정)으로 서거할 때까지 
아유타야의 안정을 확고히 했고, 
이는 훗날 아유타야가 번영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 
후대에 대왕으로 추존된 나레쑤언은 
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군주 중 하나이다. (촬영: 2025년 10월) 

태국 국군의 날 홍보 사진
1월 18일은 태국 국군의 날이다. 
나레쑤언 대왕이 코끼리 전투에서 승리한 날을 기리기 위해 
이날을 태국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사진 출처: https://www.crma.ac.th/18-มกราคม-วันกองทัพไทย/ 


▶ 와불상

        법당 바로 옆에는 흰색의 와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와불상은 나레쑤언 대왕의 재위 시기에 만들어졌으나 정확한 건립 년도는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와불상을 안치한 전각도 함께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두 개의 기둥과 일부 벽체만 남아 있는 상태다. 지금의 와불상은 1965년에 복원된 것이다.

'왓-야이-차이-몽콘’ 사원 와불상의 모습
'왓-야이-차이-몽콘’ 사원 와불상의 모습
당시 조성된 와불전은 주로 
승려들의 명상 수행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촬영: 2025년 10월) 


        '왓-야이-차이-몽콘’ 사원은 1767년, 아유타야 왕조가 버마에 의해 멸망했을 때 심각한 피해를 입고 오랫동안 방치되었으나, 그후 태국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으로 사원은 점차 복원되기 시작해, 현재는 태국 국민들의 종교적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왓-야이-차이-몽콘’ 사원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

https://chillpainai.com/scoop/15343/20-จุดเช็คอินกินเที่ยว-อยุธยา-เดินทางง่าย-ใกล้กรุงเทพ-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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