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국을 잘 몰랐다. 태국은 가끔 ‘재미난’ 이야깃거리로 회자되는, 우리가 ‘쉽게’ 해외여행 나올 수 있는 그런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태국은 한국전쟁 당시, 육해공 병력을 파병해 대한민국 자유 수호에 동참했고, 휴전 이후 1972년까지 부대를 주둔시키며, UN군 활동을 지원한 나라였다. 한국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태국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양국 관계의 특별한 토대가 되고 있다.

한국과 태국은 1958년 10월 1일, 공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당시 주월남 한국 대사에게 주태국 공사를 겸임하도록 했고, 태국은 주대만 태국 대사가 주한 공사를 겸임했다. 그후 1960년 8월 30일, 대사가 주재하는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관되었고 이듬해인 1961년 1월 6일, 주한 태국 대사관도 설립되었다. 이로써 한국과 태국의 수교는 대사급 외교 관계로 격상했다. 양국은 이어 1961년 9월 15일, 한-태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비로서 정치적 경제적 협력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세계 냉전체제를 거치며 한국과 태국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임을 표방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상호 공조체제를 줄곧 유지해 왔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태국은 적극적으로 외국 투자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경제 정책을 펼쳤고, 제조업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의 생산시설이 태국 공단에 활발히 이전하기 시작했다. 양국의 경제 협력은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은 분야별로 단계적으로 체결되었다. 상품 협정은 2006년 8월 24일, 서비스 협정은 2007년 11월 21일 그리고 투자 협정은 2009년 6월 2일에 각각 체결되었다. —태국은 당시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 때문에 상품 협정과 서비스 협정 체결은 다른 나라들과 같은 날 서명하지 못하고, 2009년 2월 27일에 서명했다. 표면적으로는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쌀이 수입개방 제외 품목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한국과 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고, 오늘날에 와서는 의료, 5G, 인공지능,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형 전략 사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논의되고 있다. 한국이 태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굳건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양국은 그동안 외교적 동반자로서 경제 협력과 함께 다양한 국제 문제에 대해 협력해 왔다. 하지만 국가 간의 진정한 우호 관계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이나 외교적 필요성만으로는 형성되지 않는다.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굳건해질 수 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그 나라 국민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근간이다. 한국은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막대한 영향과 태국 인들의 왕실에 대한 존경을 이해할 때,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들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태국은 한국이 겪었던 전쟁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역동적인 경제 성장을 이해함으로써 한국인의 ‘억센 기질’과 '빨리빨리' 문화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태국에서 한류가 큰 사랑을 받고 있고, 태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수 역시 해마다 순위권에 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태국의 영화, 음식, 전통 마사지 등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호혜적인 문화 교류의 장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진다면, 이와 같은 문화 소비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양국 국민 간 공감대를 한층 더 높이고 진정 굳건한 우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반석이 될 것이다. 문화 교류는 결국 우리와 다른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 줄 때 활성화될 수 있다. 서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이제는 이해와 존중으로 바꿔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이 블로그 지면을 통해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미력하게나마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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