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만해민 (นิมมานเหมินท์)은 치앙마이시(市)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자, 최근 10년 사이 글로벌 명소로 성장해 도시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한 지역이다. 과거에 이 지역은 주택 단지로 계획된 빈 땅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문화·상업 지구로 성장했을까? • 1960년대 초, 님만해민 가문의 토지 기부로 조성되기 시작한 주택 단지. • 1990년대 중반까지 치앙마이 대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지성인들의 동네로 성장. • 1997년의 경제 위기 이후, 예술가들이 님만해민1가(쏘이1)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며 갤러리와 카페로 대변되는 거리 문화 시작. • 2000년대 들어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경제 요충지로 급성장. • 현재 여러 곳의 미슐랭 식당, 브런치 레스토랑, 개성 있는 소품샵, 카페, 갤러리, 부티크 호텔 등이 들어서며 관광객이 즐겨 찾는 글로벌 명소로 발전. 님만해민의 기원 님만해민이라는 명칭은 님만해민이라는 한 가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님만해민 가문 은 치앙마이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 중국계 태국인 가문 이다. 1960년대 초, 님만해민 가문이 토지를 기부 하면서 지금의 님만해민 도로(람팡-치앙마이 슈퍼하이웨이에서 치앙마이 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건설될 수 있었고, 이는 오늘날 치앙마이의 대표적인 문화·상업 복합 지구인 님만해민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 가 되었다. 또한 당시 치앙마이 대학교 설립을 위한 부지 조성도 상당 부분 님만해민 가문의 토지 기부로 마련이 되었다. 공 익을 위해 가문의 토지를 기부한 낌허 님만해민(กิมฮ้อ นิมมานเหมินท์) 여사 https://www.facebook.com/p/เล่าเรื่องสยามแต่ปางก่อน-100057853602143/?locale=th_TH ...
•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아유타야 역사 공원(Ayutthaya Historical Park)의 핵심 유적지 중 하나. 아유타야 역사 공원은 아유타야 왕국의 옛 도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사원과 유적지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말. • 1357년, 아유타야 왕조의 초대 군주, 라마티보디 1세(우텅王)에 의해 건립. • ‘프라-쩨디-차이-몽콘’ 불탑: 1592년, 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레쑤언 대왕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움. • 1767년, 버마에 의해 아유타야는 멸망하고 사원은 폐허가 됨. 승전의 찬란함과 패망의 비극이 공존하는 아유타야 왕국의 상징 • 나레쑤언 대왕: 재위 기간(1590-1605) 동안 버마(미얀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아유타야 왕국의 독립을 확고히 유지하고 아유타야가 동남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음. ▶ 사원 건립 '왓-야이-차이-몽콘’(วัดใหญ่ชัยมงคล) 사원은 아유타야 왕조(1350~1767, 417년간 존속)를 창건한 라마티버디 1세(สมเด็จพระรามาธิบดี ที่ 1, 재위: 1350-1369)가 1357년에 세운 아주 유서 깊은 사원이다. 라마티버디 1세에게는 콜레라로 죽은 왕자가 있었다. 왕은 왕자의 시신을 화장한 화장터에 왓-빠-깨우(วัดป่าแก้ว)라는 이름의 사원을 짓고, 왕자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이 사원이 바로 ‘왓-야이-차이-몽콘’ 사원의 전신이 되었다. 라마티버디 1세는 왓-빠-깨우 사원을 당시 실론(스리랑카)에서 수도하고 돌아온 승려들에게 수행처로 내 주었다. 실론에서 돌아온 승려들은 카나-빠-깨우(คณะป่าแก้ว)라는 이름의 종단을 이루어 활동했다. 명상 수행을 중시한 이 종단은 실론 승단과의 연계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고, 왕실의 후원 아래 그 위상과 명성이 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