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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에메랄드 사원: 태국 왕실과 불교 문화의 상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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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메랄드 사원은 명실공히 태국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사원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정교함은 이곳이 태국의 불교 문화와 왕실 문화가 남긴 값진 유산임을 증명해 보인다. 사원의 공식 명칭은 ‘왓-프라씨-랏따나-쌋싸다람’(วัดพระศรีรัตนศาสดาราม)이다. 이는 ‘고귀한 보석처럼 존귀한 존재,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사원’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보통은 에메랄드 불상을 모신 사원이라 해서 ‘왓-프라-깨우-머라꼿’(วัด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 혹은 줄여서 ‘왓-프라-깨우’(วัดพระแก้ว)라고 불린다. 이 사원에 안치된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 중의 하나로, 불상에 얽힌 전설과 사료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불상에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 준다. [에메랄드 불상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에메랄드 사원의 야경 https://namu.wiki/w/왓%20프라깨오           에메랄드 사원은 궁궐에 딸린 사원으로 ‘랏따나꼬씬’(รัตนโกสินทร์)왕조(1782 년~현재)를 수호하는 왕실 사원이다. 왕실이 주관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경우 승려들을 초빙해 예불을 드리기는 하지만, 평상시 승려들이 이곳에서 거처하지는 않는다. ① 지역이 에메랄드 사원의 영역. 에메랄드 사원은 궐내에 위치한다. https://www.royalgrandpalace.th/th/discover/architecture  에메랄드 사원의 역사           1782년, 라마1세는‘랏따나꼬씬’ 왕조를 개창했다. 그는 ‘짜오프라야’강을 건너 새로운 도성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우선 궁궐과 함께 왕실 사원부터 짓게 했다. 라마1세는 전 왕조인 ‘톤부리’(ธนบุรี)왕조(1767~1782)의 ‘딱씬’(ตากสิน)왕을 축출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라마1...

[깐짜나부리] 태국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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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깐짜나부리'(กาญจนบุรี)도(道)의 북쪽에 위치한 '쌍카부리'(สังขละบุรี)군(郡)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다리가 하나 있다. 공식 명칭은 '웃따나누썬'(อุตตมานุสรณ์) 다리인데, 보통은 '먼'(มอญ) 다리라고 불린다. '먼'은 몬족(Mon 族)을 의미하니 몬족 다리인 셈이다.       다리가 위치한 곳은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지역에 근접해 있고 산악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한 번쯤 방문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한다면 '깐짜나부리' 버스터미널에서 승합차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한 편이다.      몬족 다리는 태국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라고 한다. 다리는 '썽까리아'(ซองกาเลีย)강을 가로지르며 몬족이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를 잇고 있다. 처음에 세워진 다리는 지금처럼 곧지 않고 구불구불한 형태였는데, 몇 차례에 걸친 보수 공사 끝에 지금은 곧은 모양의 다리로 변모했다고 한다.  <'깐짜나부리'도의 위치> https://th.wikipedia.org/wiki/ จังหวัดกาญจนบุรี <'깐짜나부리'도의 북쪽에 위치한 몬족 다리> https://palanla.com/th/domesticLocation/detail/ 1299 <몬족 다리의 모습> https://ngthai.com/featured/38966/songkhalia-river/ <몬족 다리 위에서 (촬영: 2023년 5월) 몬족 다리에 얽힌 이야기 1) 몬족      몬족은 원래 미얀마 남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살아온 동남아시아의 토착민으로 한때는 고대 동나아시아의 주도 세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버마족과 타이족에게 세력 다툼에서 밀리면서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근대에 들어서는 오랫동안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독립 투쟁을 ...

[방콕] 황금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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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산 사원 (왓싸껫)     방콕 카오싼 로드 근처에 있는 황금산 사원은 사실 아유타야 시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세월이 흘러 1782년, 라마1세(재위1782-1809)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갖고 랏따나꼬씬 왕조의 초대왕이 됐다. 라마1세는 즉위 후에 사원 주변에 운하를 파고 대대적으로 사원을 새롭게 단장했다. 그리고 사원 이름을 '왓싸껫'(วัดสระเกศ)으로 바꾸었다. '왓'은 '사원'을 뜻하고 '싸껫'은 '머리를 정결히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전에 라마1세가 즉위식의 일환으로 머리에 성수를 붓는 의식을 이곳에서 행했기 때문이다. 황금산     이 사원의 상징이자 명물인 '푸카오텅'(ภูเขาทอง, 황금산)은 라마3세(재위1824-1851)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라마5세(재위1868-1910) 때 완공됐다. 사실 라마3세는 과거 아유타야 시대에 세워졌던 불탑의 원형을 복원해 거대한 탑을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탑을 받치는 지반이 약해 자꾸 무너져 내렸고, 결국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공사는 이후 라마4세(재위1851-1868) 때에 이르러 다시 재계가 됐다. 라마3세 때와는 달리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산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탑을 세우는 방법으로 공사가 진행됐다. 외관상 오늘날의 모습을 이때 전반적으로 갖추게 된 것이다. 황금산은 라마5세 때에 이르러서야 마무리 공사까지 마치고 비로서 완성을 보았다. 정상에 세운 불탑 안에는 인도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지역에서 발굴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1900년대 초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산의 모습>   그림 출처 : https://www.silpa-mag.com/history/article_5905 <1900년대 초에 찍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산의 모습> 사진 출처 : https://www.silpa-mag.com/his...

[촌부리] '파타야'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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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 파타야(พัทยา)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태국의 역사적 인물인 딱씬(ตากสิน)과 관련이 있다. 1767년, 버마 군의 침략으로 아유타야(อยุธยา) 왕조의 멸망을 목도한 딱씬은 휘하에 약 오백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버마 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와 동부 지역으로 향했다. 짠타부리(จันทบุรี)에서 잔여 세력을 규합해 전열을 가다듬은 딱씬은 다시 아유타야로 돌아와 버마 군을 몰아내고 새로이 톤부리(ธนบุรี) 왕조를 세워 왕이 됐다. 당시 딱씬이 아유타야에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하던 중, 지금의 파타야 지역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딱씬 군대가 머문 숙영지 일대를 '탑파야'(ทัพพระยา)라고 불렀다고 한다. '탑'(ทัพ)은 군대, '파야'(พระยา)는 딱씬의 작위를 나타낸 말로 '딱씬의 군대'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탑파야라는 명칭이 세월이 흐르고 음운에 변화가 생겨 지금의 파타야로 고착됐다는 설이다. <파타야 로고: 말을 타고 군사를 이끄는 딱씬을 묘사했다> <딱씬의 진군을 나타내는 지도: 노란선은 아유타야에서 짠타부리까지의 육로 이동을 나타내고 회색선은 짠타부리에서 아유타야까지의 해로 이동을 나타낸다>      두 번째 이야기는 파타야에서 부는 계절풍과 관련이 있다. 해마다 우기가 시작되는 5월 초입에,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이 지역을 통과하는 바람이 불었는데, 사람들은 이 바람을 '롬팟타야'(ลมพัทธยา)라고 불렀다. '롬'(ลม)은 바람을 뜻하고 '팟타야'(พัทธยา)는 바람의 이름이다. 팟타야 바람이 부는 이 일대를 팟타야 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지금의 파타야로 고착됐다는 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