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에메랄드 사원의 법당에는 옥(玉)을 깎아 만든, 엷은 녹색의 작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정식 명칭은 ‘프라-풋타-마하마니-랏따나-빠띠마껀’(พระพุทธมหามณีรัตนปฏิมากร), 보통은 ‘프라-깨우-머라꼿’(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 즉 우리말로 에메랄드 불상이라 불린다.

에메랄드 불상의 기원과 전설
전설에 따르면 에메랄드 불상은 기원전 인도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실론(스리랑카)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버마(미얀마)로 향하던 중 배가 풍랑을 만나 불상이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불상은 우연히 크메르(캄보디아)에서 발견되고 아유타야(태국)로 보내진 후 또다시 불상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 후 1434년에 치앙라이(태국)에서 발견되는데 그 전설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434년 어느 날, ‘치앙라이’(เชียงราย)의 ‘왓-빠야’(วัดป่าญะ)사원에 벼락이 떨어진다. 벼락을 맞은 불탑이 깨지고 그 깨진 불탑 안에서 석회에 덮인 불상이 발견된다. 이를 영험하게 여긴 주지스님은 그 불상을 다른 불상과 함께 법당에 고이 모시게 된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불상의 코 부분에 덮인 석회가 떨어져 나가면서 비로서 에메랄드 불상이 세상에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후 ’왓-빠야’ 사원은 사람들에게 ‘왓-프라-깨우’(วัดพระแก้ว), 즉 에메랄드 불상을 모신 사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에메랄드 불상의 이동 경로
1) ‘치앙라이’에서 ‘람빵’으로
에메랄드 불상이 발견된 당시의 ‘치앙라이’는 태국 북부를 지배하던 ‘란나’(ล้านนา)왕국의 일부였다. 1436년, ‘란나’ 왕국의 ‘쌈팡깬’(สามฝั่งแกน)왕은 에메랄드 불상을 왕국의 수도인 ‘치앙마이’(เชียงใหม่)로 옮기려 한다. 하지만 불상을 운반하던 코끼리가 어찌된 영문인지 한사코 ‘치앙마이’가 아닌 ‘람빵’(ลำปาง)으로 향하자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긴 왕은 ‘치앙마이’ 가 아닌 ‘람빵’의 한 사원에 에메랄드 불상을 안치하게 한다. 이 사원이 지금의 ‘왓-프라-깨우-던따오-쑤차다람’(วัดพระแก้วดอนเต้าสุชาดาราม)사원이다.
‘람빵’에 안치된 기간: 32년 (1436∼1468)

2) ‘람빵’에서 ‘치앙마이’로
‘쌈팡깬’ 왕의 뒤를 이은 ‘띠록까랏’(ติโลกราช)왕은 1468년에 에메랄드 불상을 ‘람빵’에서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기고 ‘왓-쩨디-루엉’(วัดเจดีย์หลวง) 사원에 안치하게 한다. ‘쌈팡깬’ 왕의 유지가 그의 아들인 ‘띠로까랏’ 왕에 의해 결국 받들어진 셈이다.
‘치앙마이’에 안치된 기간: 80년 (1468∼1548)

3) ‘치앙마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1546년, 왕위 계승 문제로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된 ‘란나’ 왕국은 이웃 나라 ‘란쌍’(Lanxang, 라오스) 왕국의 세자를 왕으로 추대한다. 이 세자의 어머니 즉 ‘란쌍’ 왕국의 왕비가 전에는 ‘란나’ 왕국의 공주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란쌍’ 왕국의 세자의 신분으로 ‘란나’ 왕국의 왕위를 잇게 된 그는 ‘란나’ 왕국 제15대 ‘차이-쳇타티랏’(ไชยเชษฐาธิราช)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1548년, ‘란쌍’ 왕국의 왕(‘차이-쳇타티랏’왕의 아버지)이 죽자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란쌍’ 왕국의 수도인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에메랄드 불상도 함께 가져간다. ‘차이-쳇타리랏’ 왕은 그후 ‘치앙마이’로 돌아가지 않고 ‘루앙프라방’에 남아 ‘란쌍’ 왕국의 왕위를 잇게 된다.
‘루앙프라방’에 안치된 기간: 16년 (1548∼1564)
4) ‘루앙프라방’에서 ‘위앙짠’으로
당시 버마의 ‘따웅우’(Taungoo) 왕조는 주변 왕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한다. 버마의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란쌍’ 왕국의 ‘세타티랏’(Setthathirath)왕은 ─‘란나’ 왕국의 ‘차이-쳇타티랏’ 왕과 동일 인물─ 1564년에 왕국의 수도를 ‘루앙프라방’에서 ‘위앙짠’(지금의 ‘비엔티안’)으로 옮기고, 에메랄드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사원을 짓게 한다. 이 사원이 바로 지금의 ‘허프라깨우’(Ho Phra Keo)의 전신(前身)이다. 현재 ‘허프라깨우’는 사원으로서의 기능이 아닌 각종 불교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위앙짠’에 안치된 기간: 214년 (1564∼1778)

5) ‘위앙짠’에서 ‘톤부리’로
16세기 후반, 태국 북부의 ‘란나’ 왕국은 더는 왕조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버마의 속국으로 전락해 버린다. 태국 중부에 들어선 ‘아유타야’(อยุธยา) 왕국도 1767년 버마의 공격으로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그러마 버마의 태국 지배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린다. 버마군은 청과의 전쟁으로 인해 군사를 본국으로 철수시키고 소수의 군대만이 ‘아유타야’에 남게 된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아유타야’의 장군 ‘딱씬’(ตากสิน)은 저항 세력을 규합해 버마군을 몰아내고, 새로이 ‘톤부리’(ธนบุรี) 왕국을 세우게 된다. ‘톤부리’ 왕국은 ‘톤부리’ 지역을 ─방콕 ‘짜오프라야’강을 기준으로 서쪽 지역에 해당. 지금은 방콕의 행정구역 안에 포함됨─ 수도로 삼아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1778년에는 ‘위앙짠’마저 정벌하고 만다. 전리품으로 가져온 에메랄드 불상은 ‘톤부리’의 ‘왓-아룬’(วัดอรุณ, 새벽사원)에 안치된다.
‘톤부리’의 ‘왓아룬’에 안치된 기간: 6년 (1778-1784)

6) ‘톤부리’에서 ‘방콕’으로
‘톤부리’ 왕국이 몰락하는 1782년까지 ‘딱씬’왕의 재위기간 15년은 전쟁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는 통일왕조를 이루고 말레이 반도, 라오스, 캄보디아까지 그의 세력이 미치는 비상한 통치력을 발휘했지만 말년에는 비정상적으로 불교에 심취하고 거듭되는 실정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반정 세력에게 축출당하고 만다. 새로운 왕으로 추대된 ‘짜오-프라야-짝끄리’(เจ้าพระยาจักรี)는 ─일종의 작위(爵位)에 해당한다. 그의 이름은 ‘텅두엉’(ทองด้วง)이다. ‘위앙짠’을 정벌하고 에메랄드 불상을 가져온 장본인─ ‘톤부리’ 왕국을 끝내고 새로 ‘랏따나꼬씬’(รัตนโกสินทร์) 왕국을 수립한다. 그는 ‘짜오프라야’강을 건너 새로 도성을 조성하고 1784년, ‘왓아룬’에서 에메랄드 불상을 옮겨 와 ‘왓-프라-깨우’(วัดพระแก้ว, 에메랄드 사원)에 안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콕’ 에메랄드 사원에 안치된 기간: 1784∼현재

에메랄드 불상 이동 경로
1. 치앙라이 1434-1436 (2년) / 2. 람빵
1436-1468 (32년) / 3. 치앙마이 1468-1548
(80년) 4. 루앙프라방 1548-1564 (16년) / 5. 비엔티안 1564-1778 (214년)
/ 6. 방콕 왓아룬 1778-1784 (6년) 왓프라깨우 178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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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불상의 법의 교체 의식
에메랄드 불상은 계절마다 서로 다른 법의(法衣)를 갖추고 있다. 1년에 세 번 왕이 직접 법의를 교체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라마1세는 여름과 우기(雨期)의 법의를 각각 한 벌씩 제작하도록 명했고, 이때부터 계절에 따라 법의를 교체하는 왕실 의식이 시작되었다. 라마3세는 겨울 법의도 추가로 제작하도록 명했고 —태국의 계절은 여름, 우기, 겨울의 삼계절로 나뉜다— 이후 에메랄드 불상은 현재까지 모두 세 벌의 법의를 갖추게 되었다. 에메랄드 불상의 법의를 교체하는 의식은 왕이 직접 주관하는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의를 교체하는 의식은 각각 태국 음력 4월, 8월, 12월의 하현 첫째 날에 이루어진다.
-태국 음력 4월 하현 첫째 날: 겨울 법의에서 여름 법의로 교체
-태국 음력 8월 하현 첫째 날: 여름 법의에서 우기 법의로 교체
-태국 음력 12월 하현 첫째 날: 우기 법의에서 겨울 법의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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