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사원은 명실공히 태국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사원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정교함은 이곳이 태국의 불교 문화와 왕실 문화가 남긴 값진 유산임을 증명해 보인다. 사원의 공식 명칭은 ‘왓-프라씨-랏따나-쌋싸다람’(วัดพระศรีรัตนศาสดาราม)이다. 이는 ‘고귀한 보석처럼 존귀한 존재,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사원’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보통은 에메랄드 불상을 모신 사원이라 해서 ‘왓-프라-깨우-머라꼿’(วัด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 혹은 줄여서 ‘왓-프라-깨우’(วัดพระแก้ว)라고 불린다. 이 사원에 안치된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 중의 하나로, 불상에 얽힌 전설과 사료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불상에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 준다.

에메랄드 사원은 궁궐에 딸린 사원으로 ‘랏따나꼬씬’(รัตนโกสินทร์)왕조(1782 년~현재)를 수호하는 왕실 사원이다. 왕실이 주관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경우 승려들을 초빙해 예불을 드리기는 하지만, 평상시 승려들이 이곳에서 거처하지는 않는다.
에메랄드 사원의 역사
1782년, 라마1세는‘랏따나꼬씬’ 왕조를 개창했다. 그는 ‘짜오프라야’강을 건너 새로운 도성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우선 궁궐과 함께 왕실 사원부터 짓게 했다. 라마1세는 전 왕조인 ‘톤부리’(ธนบุรี)왕조(1767~1782)의 ‘딱씬’(ตากสิน)왕을 축출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라마1세는 ‘딱씬’ 휘하의 장군이었지만 ‘딱씬’의 광기와 실정이 누적되자 반정을 일으키고 직접 권좌에 올랐다. 왕실 사원을 짓는 것은 ‘탐마-라차’(ธรรมราชา) —불법에 따라 통치하는 태국 군주의 이상형— 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전전 왕조인 ‘아유타야’(อยุธยา)왕조(1351~1767)의 정통성을 잇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궁 안에 왕실 사원을 두는 것은 ‘아유타야’ 왕조 내내 이어진 전통이었다. 라마1세는 새 도읍의 이름을 ‘꾸룽-랏따나꼬씬-인-아요타야’(กรุงรัตนโกสินทร์อินท์อโยธยา)라고 명명했다. 이는 ‘아유타야’ 왕조를 계승하고 에메랄드 불상을 안치한 신성한 도읍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새 왕조의 정당성을 ‘아유타야’ 왕조의 정통성 계승과 함께 불교적 신성성을 표방함으로써 나타낸 것이다.
1784년, ‘왓-아룬’(วัดอรุณ, 새벽사원)에서 에메랄드 불상을 옮겨와 이곳에 안치한 이래로 에메랄드 사원은 지속적으로 증축과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 왔다. 1882년(라마5세 때)에는 ‘랏따나꼬신’ 왕조 창건 10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의 보수 작업이 한차례 진행됐고, 이후 1932년(라마7세 때) 창건 150주년과 가장 최근에는 1982년(라마9세 때) 창건 2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전면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됐다.

에메랄드 사원의 주요 건축물
‘지바카’ 청동상과 ‘프라-포티탓-피만’ 불탑
이 청동상은 라마 3세(재위 1824~1851) 시대에 조성되었다. 청동상의 주인공은 전통 의학에 정통한 어떤 선인(仙人)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과 부처님 생존시에 실존했던 전설적인 명의(名醫) ‘지바카’(Jivaka)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두 번째 설에 더 힘이 실린다.

지바카는 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불교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지바카는 마가다(Magadha)왕국, 빔비사라(Bimbisara)왕의 주치의였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병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지바카의 뛰어난 의술과 환자를 돌보는 자비로운 마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특히 태국에서는 전통 의학계를 중심으로 그를 기리고 숭배하는 정신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약이 되지 않는 식물은 없다."(ไม่มีพืชใดไม่เป็นยา)라는 말은 태국 전통 의학계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구절인데, 바로 모든 식물은 저마다 약효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던 지바카의 일성(一聲)으로 알려져 있다.
동상 앞에는 단 위에 돌판 하나가 놓여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고 약초를 빻는데 사용하는 도구였다. 동상과 돌판은 자연스럽게 치유를 상징하는 주술적 의미도 갖게 되었는데, 실제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약초를 가는 행위를 하며 병에서 낫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동상 뒤쪽으로 보이는 금빛의 작은 불탑은 라마 4세 시대에 만들어졌다. 탑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와 인도 보드가야(Bodh Gaya)의 보리수 나무 잎이 봉안되어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탑의 이름은 ‘프라-포티탓-피만’(พระโพธิธาตุพิมาน)이다.


프라-라비양
‘프라-라비양’(พระระเบียง) 회랑(回廊)이 에메랄드 사원의 둘레를 마치 담장처럼 에워싸고 있다. 회랑의 벽면에는 태국의 대표적인 서사시 ‘라마끼얀’(รามเกียรติ์)의 이야기가 벽화로 묘사되어 있다. ‘라마끼얀’(라마의 영광이란 뜻)은 동남아시아 전역에 보급된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의 태국판으로 몇몇 버전이 있으나 1797년 라마1세가 완성한 각색본이 가장 유명하다.



프라-우보쏫
‘프라-우보쏫’(พระอุโบสถ) 법당은 ‘아유타야’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태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그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겹으로 포개진 듯한 다층 구조의 지붕과 지붕 용마루의 양 끝단에 달린 ‘처파’(ช่อฟ้า)라 불리는 장식물이다. ‘처파’의 모양은 마치 조류의 머리처럼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가루다’(Garuda)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루다’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비슈누’(Vishnu)신이 타고 다니는 신화 속 존재다.



법당의 외곽은 타일로 장식된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구조물을 ‘깜팽-깨우’(กำแพงแก้ว)라 부르는데 공간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 주며 담장 안쪽이 신성한 구역임을 나타내는 용도로 쓰인다.

법당 지붕의 박공벽(牔栱壁)은 ‘가루다’ 위에 올라 탄 ‘라마’(Rama)의 모습으로 꾸며졌다. ‘라마’는 ‘비슈누’의 화신(化身)이다. 태국에서 국왕은 ‘비슈누’가 환생한 것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데, 국왕을 지칭할 때 통상 ‘라마’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태국의 국왕은 ‘랏따나꼬씬’ 왕조의 열 번째 왕이기에 라마10세(재위2016~현재)라 칭한다.


법당의 외벽 기단부 위에도 횡렬로 늘어선 ‘가루다’를 볼 수 있다. '가루다’가 ‘나가’(Naga)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화 속 동물(뱀)— 를 잡아채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신화 속에서 보여지는 ‘가루다’와 ‘나가’의 상극 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신화 속에서 ‘가루다’와 ‘나가’는 오랫동안 앙숙이지만, 결국 ‘가루다’가 ‘나가’를 제압하는 존재로 묘사됐다. 이런 신화적 배경 때문에 ‘나가’를 잡아챈 ‘가루다’의 모습이 왕실의 권위와 힘을 나타내는 일종의 신화적 상징물로서 쓰인 것이다.

‘프라-우보쏫’ 법당 안에는 가부좌를 튼 에메랄드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높은 단 위에 모셔져 있는데, 이와 같은 구조물을 ‘붓싸복’(บุษบก)이라고 부른다. ‘붓싸복’은 보통 기단 위에 네 개의 기둥이 첨탑 모양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개방형 구조물이다. 불상을 안치하는 공간으로 쓰이거나 왕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왕이 앉는 자리, 즉 이동형 어좌로 쓰이기도 한다.


에메랄드 불상 앞 좌우 양쪽에는 마치 에메랄드 불상을 수호하듯 두 개의 불상이 서 있다. 이는 라마3세가 선왕인 라마1세와 라마2세를 기리기 위해 봉헌한 불상이다.

법당의 내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 항마성도(降魔成道), 불교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나타내는 삼계(三界) 등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삼계는 불교에서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모든 중생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이 삼계 속에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반복하게 된다.
쁘라쌋-프라텝-비던
‘쁘라쌋-프라텝-비던’(ปราสาทพระเทพบิดร) 전당(殿堂)은 지붕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동서남북 사면에서 박공벽을 볼 수 있다. 위에서 바라보면 십자형 지붕처럼 보인다. 지붕의 가운데 부분에는 마치 탑을 올린 듯한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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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당은 라마 4세(재위 1851~1868) 시대인 1856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 라마4세는 전당에 ‘풋타-쁘랑-쁘라쌋’(พุทธปรางค์ปราสาท)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당을 지을 당시 라마4세는 에메랄드 불상을 이곳으로 옮기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내부 공간이 너무 협소해 각종 의식을 거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불상 이전 계획은 보류가 됐다. 그후 라마 5세(재위 1868~1910)는 계획을 변경해 에메랄드 불상은 원래 있던 법당에 그대로 두고, 대신 황금 불탑을 전당에 안치하도록 했다.
1903년,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전당의 지붕과 불탑이 소실되는 사고가 있었다. 라마6세(재위 1910~1925)는 복구 작업이 끝난 전당에 ‘랏따나꼬씬’ 왕조 역대 국왕들의 동상을 모시고 선왕의 덕을 기리는 장소로 활용하도록 했다. 지금 쓰는 전당의 이름(쁘라쌋-프라텝-비던)도 이때 정해진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라마1세부터 라마9세까지의 실물 크기 동상이 안치되어 있다.

프라-몬돕
‘프라-몬돕’(พระมณฑป) 전각(殿閣)은 라마1세 때 만들어졌다.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네모난 구조물로 지붕은 높다랗게 층을 이루며 길고 뾰족하게 마무리됐다. 건물 안에는 경전을 보관하는 경함(經函)이 있고, 그 안에 ‘팔리 삼장’(Pali三藏, พระไตรปิฎก)이 봉안되어 있다. 팔리 삼장은 초기 불교의 경전으로 경장, 율장, 논장의 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마1세(재위1782~1809)는 즉위 후에 삼장의 체계적인 정리와 편찬을 명했다. 예전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할 당시 버마와의 전쟁으로 많은 불교 경전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1789년, 마침내 팔리어 경전의 완전한 판본이 완성됐다. 이 경전을 ‘프라-뜨라이비독-차밥-텅-야이’(พระไตรปิฎกฉบับทองใหญ่), 황금 팔리 삼장본이라고 부른다. 현재 ‘프라-몬돕’ 전각에 보관 중인 경전이 바로 이것이다.



벽의 사면에는 모두 문이 있고 각각의 문으로 향하는 계단이 기단부에 설치돼 있다. 계단의 난간에는 5개의 머리와 사람의 얼굴을 한 ‘나가’가 형상화 되어 있다. 계단 난간에 설치된 ‘나가’의 조형물은 태국 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보통 머리를 치켜든 뱀의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이처럼 사람의 얼굴을 한 ‘나가’(นาคจำแลง)도 볼 수 있다. 태국 전설 속에서 나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 세상에 나타나기도 한다.


‘프라-몬돕’ 전각의 네 모퉁이에는 화성암으로 만든 석불이 안치되어 있다. 1896년 라마5세가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있는 불교 유적지, ‘보로부두르’(Borobudur)를 방문했을 때 인도네시아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속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기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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