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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기, '통뜨라이롱'

태국의 국기

    국기는 해당 국가의 역사적 정통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태국의 국기는 태국어로 '통찻타이'(ธงชาคิไทย) 또는 '통뜨라이롱'(ธงไตรรงค์)이라 불린다. 통찻타이는 태국 국기라는 뜻이고 통뜨라이롱은 우리말로 삼색기(三色旗)라 할 수 있다. 삼색기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태국 국기는 세가지 색, 즉 가운데 파랑 띠를 중심으로 하양 띠와 빨강 띠가 위아래를 감싸며 상하 대칭을 이루고 있다. 파랑은 국왕을, 하양은 종교의 순수성을, 그리고 빨강은 국민의 피를 상징한다. 국왕, 종교, 국민이 태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태국 국기

 <태국 국기>
태국 국기의 비율
<태국 국기의 비율>

태국 국기의 변천 과정

1. 붉은 깃발 (사용: 1680년-1782년)

붉은 깃발
    태국 역사상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깃발이 쓰인 첫 번째 사례는 프랑스의 사료에 등장하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당시 태국은 아유타야 왕조 나라이 대왕(King Narai the Great, สมเด็จพระนารายมหาราช, 재위: 1656-1688)의 통치 시기였다. 기록에 따르면 1680년 9월 3일, 프랑스는 짜오프라야강(江) 어귀까지 군함을 보내 아유타야와 통상 외교 관계를 맺고자 했다. 프랑스의 군함과 아유타야의 방어 진지에서는 서로 예포(禮砲)를 쏘며 상대에 대한 경의와 답례를 표하기로 했는데 관례에 따라 예포를 쏘려면 국기를 게양해야 했다. 당시 아유타야는 아직 국기가 존재하지 않아, 홀랜드(Holland) 국기를 대신 게양했는데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임시방편으로 붉은 깃발을 게양했다. 프랑스는 이에 예포를 발사하고 국기 게양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붉은 깃발은 태국을 상징하는 깃발로 여겨지게 되었다.   

2. 붉은 깃발 중앙에 차크라 문양 배치 (사용: 1782년-1817년)

붉은 깃발 중앙에 차크라 문양
    랏따나꼬씬 왕조를 세운 라마 1세(재위: 1782-1809)는 기존의 붉은 깃발에 흰색의 차크라 문양을 추가함으로써 깃발에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고자 했다. 차크라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비슈누 신의 무기로 날카로운 날이 달린 원반인데 랏따나꼬씬 왕조에서 왕의 상징으로 쓰였다. 이 깃발은 왕실에서만 사용되었고 민간에서는 붉은 깃발을 사용했다.

3. 차크라 문양 안에 흰 코끼리 문양 배치 (사용: 1817년-1855년)

차크라 문양 안에 흰 코끼리 문양
    라마 2세(재위: 1809-1824)는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한층 더 나타내고자 차크라 문양 안에 흰 코끼리 문양을 추가로 배치했다. 이 깃발 역시 왕실에서만 사용되었고 민간에서는 여전히 붉은 깃발을 사용했다.

4. 차크라 문양을 빼고 흰 코끼리 문양만 남김 (사용: 1855년-1916년)

흰 코끼리 문양
    라마 4세(재위: 1851-1868)가 즉위한 후, 태국은 서양 여러 나라와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각국의 영사관이 방콕에 들어섰고 영사관 앞에 자국의 국기를 게양했다. 태국에서도 서양처럼 왕실과 민간의 구별 없이 국가를 상징하는 하나의 국기가 필요해졌다. 라마 4세는 기존 왕실에서 쓰던 깃발을 변경해 민간에서도 사용 가능한 새로운 깃발의 제작을 명했다. 이에 따라 깃발 중앙에 있던 차크라 문양을 없애고 -차크라는 왕의 상징이기에 왕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흰 코끼리 문양만 남긴 새로운 깃발이 탄생했다. 이 깃발은 왕실과 민간에서 공통으로 사용되었다. 

5. 예복으로 장식된 흰 코끼리 문양 (1916년)

예복으로 장식된 흰 코끼리 문양
    라마 6세(재위: 1910-1925)는 세 번에 걸쳐 깃발의 모양에 변화를 주었다. 첫 번째 변화는 아무런 장식이 없었던 흰 코끼리에 예복을 입히고 단상 위에 올라서게 한 모습이었는데 이 깃발은 얼마 안 가 다시 새로운 깃발로 교체됐다.

6. 붉은색 줄무늬와 하얀색 줄무늬로 구성된 깃발 (사용: 1916년-1917년)

붉은색 줄무늬와 하얀색 줄무늬로 구성된 깃발
    라마 6세에 의해 단행된 두 번째 국기의 변화로 태국의 국기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코끼리 문양 대신 현재 태국의 국기와 유사한 형태의 줄무늬로 바뀌게 되었다.

7. 빨강, 하양, 파랑의 줄무늬로 구성된 삼색기 (사용: 1917년-2017년)

빨강,하양,파랑의 삼색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태국은 초반에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주축인 연합국 편에 합류했다. -1917년 7월, 태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하여 선전 포고를 하고 1918년 4월에는 천 명 이상의 병력을 프랑스 전선에 파병했다- 그런데 주요 연합국의 국기 색깔이 빨강, 하양, 파랑의 삼색인 것에 영향을 받은 라마 6세는 태국의 국기도 빨강, 하양, 파랑의 삼색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가운데 줄을 파란색으로 바꾸고 1917년 9월 28일 태국 삼색기의 제정을 일반에 공표했다.

8. 현재 태국의 삼색기 (사용: 2017년-현재)

현재 태국의 삼색기
    2016년 9월, 태국 정부는 라마 6세가 삼색기를 제정한 날인 9월 28일을 태국 국기의 날(Thai National Flag Day, วันพระราชทานธงชาคิไทย)로 정했다. 그리고 다음해 2017년 9월 28일에는 삼색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빨강, 하양, 파랑의 색상에 약간의 변화를 준 새로운 색상의 삼색기가 만들어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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