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촌부리] '파타야'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지명 파타야(พัทยา)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태국의 역사적 인물인 딱씬(ตากสิน)과 관련이 있다. 1767년, 버마 군의 침략으로 아유타야(อยุธยา) 왕조의 멸망을 목도한 딱씬은 휘하에 약 오백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버마 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와 동부 지역으로 향했다. 짠타부리(จันทบุรี)에서 잔여 세력을 규합해 전열을 가다듬은 딱씬은 다시 아유타야로 돌아와 버마 군을 몰아내고 새로이 톤부리(ธนบุรี) 왕조를 세워 왕이 됐다. 당시 딱씬이 아유타야에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하던 중, 지금의 파타야 지역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딱씬 군대가 머문 숙영지 일대를 '탑파야'(ทัพพระยา)라고 불렀다고 한다. '탑'(ทัพ)은 군대, '파야'(พระยา)는 딱씬의 작위를 나타낸 말로 '딱씬의 군대'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탑파야라는 명칭이 세월이 흐르고 음운에 변화가 생겨 지금의 파타야로 고착됐다는 설이다.

파타야 로고
<파타야 로고: 말을 타고 군사를 이끄는 딱씬을 묘사했다>

딱씬 군대의 이동 경로
<딱씬의 진군을 나타내는 지도: 노란선은 아유타야에서 짠타부리까지의 육로 이동을 나타내고 회색선은 짠타부리에서 아유타야까지의 해로 이동을 나타낸다>

    두 번째 이야기는 파타야에서 부는 계절풍과 관련이 있다. 해마다 우기가 시작되는 5월 초입에,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이 지역을 통과하는 바람이 불었는데, 사람들은 이 바람을 '롬팟타야'(ลมพัทธยา)라고 불렀다. '롬'(ลม)은 바람을 뜻하고 '팟타야'(พัทธยา)는 바람의 이름이다. 팟타야 바람이 부는 이 일대를 팟타야 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지금의 파타야로 고착됐다는 설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방콕] 에메랄드 불상의 신비로운 여정

방콕 에메랄드 사원의 법당에는 옥(玉)을 깎아 만든, 엷은 녹색의 작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정식 명칭은 ‘프라-풋타-마하마니-랏따나-빠띠마껀’(พระพุทธมหามณีรัตนปฏิมากร), 보통은 ‘프라-깨우-머라꼿’(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 즉 우리말로 에메랄드 불상이라 불린다. 에메랄드 불상 https://www.facebook.com/p/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วัดพระศรีรัตนศาสดาราม-100057417700307/?locale=th_TH&_rdr  에메랄드 불상의 기원과 전설 전설에 따르면 에메랄드 불상은 기원전 인도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실론(스리랑카)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버마(미얀마)로 향하던 중 배가 풍랑을 만나 불상이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불상은 우연히 크메르(캄보디아)에서 발견되고 아유타야(태국)로 보내진 후 또다시 불상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 후 1434년에 치앙라이(태국)에서 발견되는데 그 전설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434년 어느 날, ‘치앙라이’(เชียงราย)의 ‘왓-빠야’(วัดป่าญะ)사원에 벼락이 떨어진다. 벼락을 맞은 불탑이 깨지고 그 깨진 불탑 안에서 석회에 덮인 불상이 발견된다. 이를 영험하게 여긴 주지스님은 그 불상을 다른 불상과 함께 법당에 고이 모시게 된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불상의 코 부분에 덮인 석회가 떨어져 나가면서 비로서 에메랄드 불상이 세상에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후 ’왓-빠야’ 사원은 사람들에게 ‘왓-프라-깨우’(วัดพระแก้ว), 즉 에메랄드 불상을 모신 사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치앙라이 ‘왓프라깨우’ 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 에메랄드 불상이 처음 발견된 장소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https://www.chiangraifocus.net/2018/article/27  에메랄드 불상의 이동 경로 1) ‘치앙라이’에서 ‘람빵’으로 에메랄드 불상이 발견된 당시의 ‘치앙라이’는...

[깐짜나부리] 태국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는 어디에 있을까?

      '깐짜나부리'(กาญจนบุรี)도(道)의 북쪽에 위치한 '쌍카부리'(สังขละบุรี)군(郡)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다리가 하나 있다. 공식 명칭은 '웃따나누썬'(อุตตมานุสรณ์) 다리인데, 보통은 '먼'(มอญ) 다리라고 불린다. '먼'은 몬족(Mon 族)을 의미하니 몬족 다리인 셈이다.       다리가 위치한 곳은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지역에 근접해 있고 산악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한 번쯤 방문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한다면 '깐짜나부리' 버스터미널에서 승합차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한 편이다.      몬족 다리는 태국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라고 한다. 다리는 '썽까리아'(ซองกาเลีย)강을 가로지르며 몬족이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를 잇고 있다. 처음에 세워진 다리는 지금처럼 곧지 않고 구불구불한 형태였는데, 몇 차례에 걸친 보수 공사 끝에 지금은 곧은 모양의 다리로 변모했다고 한다.  <'깐짜나부리'도의 위치> https://th.wikipedia.org/wiki/ จังหวัดกาญจนบุรี <'깐짜나부리'도의 북쪽에 위치한 몬족 다리> https://palanla.com/th/domesticLocation/detail/ 1299 <몬족 다리의 모습> https://ngthai.com/featured/38966/songkhalia-river/ <몬족 다리 위에서 (촬영: 2023년 5월) 몬족 다리에 얽힌 이야기 1) 몬족      몬족은 원래 미얀마 남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살아온 동남아시아의 토착민으로 한때는 고대 동나아시아의 주도 세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버마족과 타이족에게 세력 다툼에서 밀리면서  점차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근대에 들어서는 오랫동안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독립 투쟁을 ...

[방콕] 전승 기념탑은 왜 설립되었을까?

전승 기념탑      전승 기념탑( อนุสาวรีย์ชัยสมรภูมิ)은 1940년에 일어난 태국-프랑스 전쟁( กรณีพิพาทระหว่างไทยกับฝรั่งเศส)에서 태국이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경찰, 그리고 민간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42년 6월 24일, 준공식을 거행하고 세상에 선보였다. <과거 전승 기념탑의 모습 (1946년에 촬영)> 사진 출처:  https://www.silpa-mag.com/history/article_73710           탑의 모습은 소총의 총구에 부착하는 대검( 帶劍)을 형상화했다. 대검 5자루를 칼날은 바깥으로 향하고, 칼끝은 하늘을 향하도록 한데 붙여놓은 모습이다. 탑을 바치는 중간 기단 위에는 모두 5개의 동상이 서 있는데, 각각 육군, 공군, 해군, 경찰, 그리고 민간인을 나타낸다. <현재 전승 기념탑의 모습> 사진 출처: Bangkok Metropolitan Administration <전승 기념탑 중간 기단 위에 서 있는 동상들(1)> 사진 출처:   Bangkok Metropolitan Administration <전승 기념탑 중간 기단 위에 서 있는 동상들(2)>           탑을 받치는 가장 아랫부분인 기단부의 외벽에는 태국-프랑스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기단부의 내부 공간에는 유골이 안장되어 있다. 그후 한국 전쟁 및 기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된 군인들의 유골과 이름을 추가로 안치하고 새겨 넣어 그 넋을 기리고 있다. <기단부 외벽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 사진 출처: Bangkok Metropolitan Administration 역사적 배경 1)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쟁탈과 태국의 영토 할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