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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전승 기념탑은 왜 설립되었을까?

전승 기념탑      전승 기념탑( อนุสาวรีย์ชัยสมรภูมิ)은 1940년에 일어난 태국-프랑스 전쟁( กรณีพิพาทระหว่างไทยกับฝรั่งเศส)에서 태국이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경찰, 그리고 민간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42년 6월 24일, 준공식을 거행하고 세상에 선보였다. <과거 전승 기념탑의 모습 (1946년에 촬영)> 사진 출처:  https://www.silpa-mag.com/history/article_73710           탑의 모습은 소총의 총구에 부착하는 대검( 帶劍)을 형상화했다. 대검 5자루를 칼날은 바깥으로 향하고, 칼끝은 하늘을 향하도록 한데 붙여놓은 모습이다. 탑을 바치는 중간 기단 위에는 모두 5개의 동상이 서 있는데, 각각 육군, 공군, 해군, 경찰, 그리고 민간인을 나타낸다. <현재 전승 기념탑의 모습> 사진 출처: Bangkok Metropolitan Administration <전승 기념탑 중간 기단 위에 서 있는 동상들(1)> 사진 출처:   Bangkok Metropolitan Administration <전승 기념탑 중간 기단 위에 서 있는 동상들(2)>           탑을 받치는 가장 아랫부분인 기단부의 외벽에는 태국-프랑스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기단부의 내부 공간에는 유골이 안장되어 있다. 그후 한국 전쟁 및 기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된 군인들의 유골과 이름을 추가로 안치하고 새겨 넣어 그 넋을 기리고 있다. <기단부 외벽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 사진 출처: Bangkok Metropolitan Administration 역사적 배경 1)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쟁탈과 태국의 영토 할양  ...

[방콕] 에메랄드 불상의 신비로운 여정

방콕 에메랄드 사원의 법당에는 옥(玉)을 깎아 만든, 엷은 녹색의 작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정식 명칭은 ‘프라-풋타-마하마니-랏따나-빠띠마껀’(พระพุทธมหามณีรัตนปฏิมากร), 보통은 ‘프라-깨우-머라꼿’(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 즉 우리말로 에메랄드 불상이라 불린다. 에메랄드 불상 https://www.facebook.com/p/พระแก้วมรกต-วัดพระศรีรัตนศาสดาราม-100057417700307/?locale=th_TH&_rdr  에메랄드 불상의 기원과 전설 전설에 따르면 에메랄드 불상은 기원전 인도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실론(스리랑카)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버마(미얀마)로 향하던 중 배가 풍랑을 만나 불상이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불상은 우연히 크메르(캄보디아)에서 발견되고 아유타야(태국)로 보내진 후 또다시 불상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 후 1434년에 치앙라이(태국)에서 발견되는데 그 전설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434년 어느 날, ‘치앙라이’(เชียงราย)의 ‘왓-빠야’(วัดป่าญะ)사원에 벼락이 떨어진다. 벼락을 맞은 불탑이 깨지고 그 깨진 불탑 안에서 석회에 덮인 불상이 발견된다. 이를 영험하게 여긴 주지스님은 그 불상을 다른 불상과 함께 법당에 고이 모시게 된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불상의 코 부분에 덮인 석회가 떨어져 나가면서 비로서 에메랄드 불상이 세상에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후 ’왓-빠야’ 사원은 사람들에게 ‘왓-프라-깨우’(วัดพระแก้ว), 즉 에메랄드 불상을 모신 사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치앙라이 ‘왓프라깨우’ 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 에메랄드 불상이 처음 발견된 장소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다. https://www.chiangraifocus.net/2018/article/27  에메랄드 불상의 이동 경로 1) ‘치앙라이’에서 ‘람빵’으로 에메랄드 불상이 발견된 당시의 ‘치앙라이’는...